예전에는 AWS나 Google Cloud의 인증 시험을 통과하려고 참 부단히도 애를 썼다.
퇴근 후 밤늦게까지 AWS 콘솔 구석구석을 기웃거리고, VPC 피어링과 트랜짓 게이트웨이의 한계치나 IAM 정책의 우선순위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두꺼운 문제은행을 파고들었다. 주말 아침이면 강남에 있는 오프라인 시험장에 찾아가 신분증을 내밀고, 주머니 속 소지품을 사물함에 모두 넣은 뒤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남들의 노력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나도 이 바닥에서 쓸모 있는 엔지니어라는 걸 증명하려고 아등바등 하며 달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시절엔 콘솔의 복잡한 메뉴 트리를 외우고, 남들이 겪은 장애 케이스를 문제집으로나마 미리 체화해 두는 것이 곧 엔지니어의 전투력이었다.
하지만 2026년 10월,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때 그렇게 공들여 땄던 인증서들과 레벨이 AI앞에서 조금씩 빛바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Route 53의 가중치 기반 라우팅이나 헬스 체크 설정을 세세히 외우지 못해도 Claude나 Codex에게 맡기면 알아서 구성을 끝내버린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던 Azure 포털의 Entra ID와 서브스크립션 권한 트리도, 내가 직접 콘솔에서 ClickOps로 삽질하지 않아도 LLM이 알아서 세팅해 주는 시대가 왔다. (물론 회사 프로덕션에서는 AI가 멋대로 리소스를 날리거나 드리프트(Drift)를 내게 둘 수 없으니 최종 방아쇠는 무조건 내가 직접 당기지만... 어차피 terraform plan만 내 눈으로 검수하면 되는 HCL 코드 작성은 논외로 치자 ㅋㅋㅋ)
IaC(Infrastructure as Code)의 시대에도 인프라의 기초 체력과 전체 아키텍처를 조망하는 지식은 여전히 필수다. 하지만 우리가 밤잠 줄여가며 에러 로그와 싸워 얻어냈던 그 재밌는 지식과 훈장 같던 노하우들을 이제는 AI가 단 몇 초 만에 대신 해주는 세상이 왔다는 게, 그 시절을 통과해 온 엔지니어로서 한편으론 조금 쓸쓸하고 슬프기도 하다.
나는 존 카맥(John Carmack)이라는 개발자를 참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둠》, 《퀘이크》, 《울펜슈타인》에 미쳐 살던 꼬마 게이머였는데, 386·486 PC의 한계를 수학적 알고리즘과 기막힌 최적화로 뚫어내던 이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크면 저런 멋진 개발자가 되어야지'라는 꿈을 꾸며 자랐다.

그 존카맥 아재가 최근 AI 시대를 맞아 흔들리는 개발자들에게 던진 말이 있다.
"코딩 그 자체가 가치의 원천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코드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마세요.
핵심 역량은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입니다. 소프트웨어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도구일 뿐인데, 너무 많은 프로그래머가 그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도구의 디테일에 매몰되지 말고 전달하는 가치에 집중하세요."
이 말은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동안 진짜로 '문제를 푸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특정 도구와 프레임워크의 복잡한 사용법을 독점해 인정받던 사람'이었을까.
결국 개발자는 문제를 푸는 사람일 뿐이다. 도구인 IDE와 프로그래밍 환경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해진 세상이 왔다면, 우울해할 게 아니라 오히려 한 사람이 더 많고 더 거대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세상이 온 것 아닐까?
소싯적에 나는 루비 온 레일즈(Ruby on Rails)를 참 좋아했다. 액티브 레코드(Active Record) 같은 우아한 개념들이 녹아든 라라벨(Laravel)도 정말 좋아해서 소싯적 현업에서 실컷 썼다. 그 시절 우리가 그 프레임워크들에 열광했던 건, 인간의 뇌 용량과 타이핑 속도가 유한했기에 '인간이 읽고 쓰기 편한 코드'가 최고의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일즈를 만든 DHH가 이번 Rails World 2026에서 던진 말도 참 재미있었다. 평소 러스트(Rust)의 복잡함을 그토록 혐오하던 양반이,
"내가 직접 눈으로 코드를 단 한 줄도 안 봐도 된다면 러스트는 정말 환상적인 언어다(Rust is amazing if you never, ever, ever have to look at it yourself)"
라며, AI 시대에는 내가 코드를 직접 보지 않고 에이전트가 알아서 다 짜주니 이제는 러스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인간이 코드를 직접 한 줄씩 읽고 다듬던 시대의 문법적 취향조차, 에이전트가 코드를 생산하는 시대 앞에서는 완전히 재정의되고 있다. 이렇듯 어느 쪽은 자신이 평생 쌓아온 성이 무너지는 것 같아 AI 앞에서 환멸과 두려움을 느끼는 반면, 다른 어느 쪽은 이제야말로 혼자서도 거대한 시스템을 지휘할 수 있는 꿈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며 기대에 부푼다.
사실 긴 호흡으로 돌아보면, 컴퓨터 사이언스의 역사는 매년 이런 패러다임 시프트를 거쳐 왔다.
C와 C++로 메모리 주소를 직접 계산하고 해제하며 세그멘테이션 폴트(Segmentation Fault)와 씨름하던 시대에서, 가비지 컬렉터가 달린 Java와 Kotlin처럼 메모리 관리를 직접 안 해도 되는 시대로 넘어왔을 때를 떠올려 보자.
하드웨어의 CPU와 메모리 능력치가 올라갈 때마다, 기술은 늘 기계의 고통을 덜어내고 사람에게 더 편하게 다가오는 쪽으로 큰 범위의 시프팅을 거듭해 왔다.
지금의 AI 역시 기계어에서 고수준 언어로, 고수준 언어에서 다시 '인간의 의도'로 추상화의 계단이 한 칸 더 올라간 것뿐이다.
이제는 이런 AI 기술을 쓴다는 게 도구를 넘어 그냥 내 피부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나 일상이 되었느냐면, OpenAI나 Anthropic, Google의 서버에 장애가 터지면 그 순간 하던 일이 전부 멈춰버릴 정도다. (이래서 다들 로컬 LLM을 찾나 보다.)
이 아찔한 의존성과 멈춤을 회피해 보겠다고, 이제는 천만 원이 훌쩍 넘는 NVIDIA DGX Spark를 책상 밑에 들이거나 RTX 5090 Ti 그래픽카드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다. 물론 나도 이번 10월, 11월에 나온다는 맥 스튜디오 울트라 512GB 모델을 보며 '저거 한 대면 거대 모델을 내 방에 상주시켜 놓고 쓸 수 있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일단은 생각만...)
그럼 앞으로의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지점을 보고 나아가야 할까?
예전에는 분명한 잣대가 있었다. 어려운 기술 문법을 외우고, 남들이 못 푸는 구현의 난제를 풀어서 나의 능력을 인정받던 세대였다.
하지만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How)'를 AI가 순식간에 해결해 주는 세대에서는, 우리가 어떤 문제들을 나열하고 풀어야 할까?
이 질문 끝에 다다를수록, 이제는 '기술'의 문제보다는 '도메인'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엔지니어들은 현장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날것의 문제들을 가장 경제성 있는 도구와 지식으로 풀어내어 가치를 창조해 내는 멋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어떤 작업에 어떤 모델을 붙여야 비용과 지연 시간의 타산이 맞는지, 조직의 민감한 데이터가 어디까지 흘러가도 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AI가 그럴듯하게 내놓은 결과물 중 무엇이 환각이고 무엇이 검증 가능한 사실인지 판단하는 일.
도구들이 이토록 멋지게 진화했다면, 엔지니어의 지식을 정의하고 점검하는 기준 또한 과거의 암기식 시험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AIDAN(에이아이단, 에이단) — https://aidan.agentcat.app 서비스를 만들게 되었다.
에이단의 문제 풀(Pool)은 매달 말에 새로 만들어서 올린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모델이 쏟아지고, OpenAI와 Anthropic, Google의 공식 가이드라인과 기술 표준이 숨 가쁘게 바뀌는 시대다. (장인처럼 에이전트 하네스를 깎던 시대는 벌써 3개월도 안 되어 지나가 버렸다...)
한 번 외우면 3년은 우려먹던 예전 자격증과 달리, 지금 당장 현업의 변화 속에서 내가 얼마나 정확히 알고 판단하고 있는지를 바로바로 체크할 도구가 필요했다.
단, 이 시험 점수를 가지고 "너는 80점짜리 인재야"라고 누군가를 재단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고작 이 문제 하나를 푸느냐 못 푸느냐라는 점수로 사람을 나누기에는 지금 당장의 문제집이 너무 얇기도 하거니와, 아직 인류가 이 AI라는 존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조차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에이단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 나의 현재 상태, 그래서 당장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 혹은 내가 이미 현장의 원칙들을 얼마나 단단히 알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목표와 이정표를 확인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매일 푸는 10문항 수련과 8개 과정의 수련서(거창하게 수련서라 부르지만, 각 벤더의 공식 문서와 실전 지식을 정리한 PDF 교재들이다)는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모두 무료로 내놓았다.
반면 GitHub 프로필에 걸 수 있는 단증(배지)이나 실제 승급 테스트는 LLM이 절대 개입하지 못하도록 전용 앱으로만(심지어 외부 개입이나 우회를 막으려고 Wi-Fi도 못 붙게 해놨다) 풀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검색창도, AI 사이드바도 없이 오직 문제지 앞에서 내 머릿속에 체화된 감각만으로 마주하게 만든 것이다.
이번 달에 풀어서 100점을 맞았다고 다음 달에 또 100점을 맞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다음 달이면 기술도, 문제도 다시 바뀌어 있을 테니까. 그래서 한 번 따고 서랍에 넣어두는 죽은 인증서가 아니라, 매달 여러 번 부딪혀 풀어보면서 문제도 점점 레벨업되고, 시험을 보는 사람과 문제를 내는 사람도 같이 레벨업하는 살아있는 도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